판의 미로-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는 2006년에 개봉한 판타지 영화이다. 기예르모 델 토로가 감독을 맡았으며 러닝타임은 119분 정도이다. 제79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촬영상, 미술상을 받는 등 다수의 시상식에서 수상을 한 내역이 있다. 제목과 포스터만 보면 마치 동화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황금나침반이나 나니아처럼 환상적인 모험을 떠나는 판타지 영화 같아 보이지만 생각보다 내용이 많이 어둡기 때문에 아이들과 함께 보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잔인하고 징그러운 장면도 다수 포함되어 있어 어른들이 보기에도 결코 쉽지 않다.
기예르모 델 토로, 하나의 장르가 되다
기예르모 델 토로는 1964년생 멕시코 출신의 감독이다. 대표작으로는 <판의 미로-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최근에는 <피노키오>까지 다양하다. 그가 만든 영화들은 보다 보면 기예르모가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특징이 뚜렷하다. 몇 가지만 말해보자면 우선 기괴한 판타지가 많다는 것이다. 동화적인 요소들이 가득하지만 환상적이고 아름답기보다는 기괴하다. 특히 파충류가 많이 나오는 편인데 그 디자인이 화면에 손도 대기 싫을 정도로 징그러울 정도이다. 실제로 기예르모 감독은 어려서부터 프랑켄슈타인과 같은 괴물, 호러 영화를 좋아했으며 극한의 상상력으로 창조된 괴물들이야말로 아름답다고 직접 말한 적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작품에서 그 특징이 매우 잘 드러나는 듯하다. 두 번째로는 작품 속에 전쟁이 많이 나온다는 것이다. 판의 미로에서는 스페인 내전, 셰이프 오브 워터에서는 미국과 소련의 냉전, 심지어 피노키오에도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넣어 영화 전체에 암울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주고 있다. 사실 동화와 전쟁은 굉장히 상반되는 이미지인데 이를 함께 사용함으로써 전쟁의 참혹함을 더 강조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줄거리
1944년 스페인, 내전은 끝이 났지만 파시스트 정권에 대항하는 저항군과 이들을 진압하기 위한 정부군의 대립이 진행 중이다. 이야기의 주인공 오필리아는 만삭인 엄마 카르멘과 함께 새아빠인 비달 대위에게 가는 길이다. 오필리아의 아버지는 재봉사였지만 전쟁으로 인해 사망하고 이후 엄마가 대위와 만나 아이를 가지면서 함께 살게 된 것이다. 저택을 구경하던 오필리아는 요정을 발견하고 숲으로 따라간다. 그곳에서 자신을 판이라 소개하는 생명체를 만나게 되고 오필리아가 인간을 동경해 지상으로 올라왔다가 기억을 잃은 지하 왕국의 공주 모안 나라는 사실을 듣게 된다. 지하 왕국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세 가지 임무를 수행해 내야만 한다. 첫 번째 임무는 무사히 해냈지만 두 번째 임무에서 오필리아는 판이 말해준 금기를 깨고 만다. 괴물에게서 간신히 도망쳐 나오지만 판은 금기를 깬 오필리아에게 더 이상 지하 왕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 말하고 사라진다. 설상가상으로 유일한 버팀목이었던 엄마마저 출산 도중 세상을 떠나고 이제 오필리아의 곁에는 처음부터 뱃속의 아기만 중요했던 비달 대위뿐이다. 방치되다시피 지내던 어느 날 밤, 실의에 빠진 오필리아의 앞에 판이 나타나고 마지막 기회를 준다. 오필리아에게 주어진 마지막 미션은 얼마 전 태어난 동생을 데리고 판을 처음 만났던 곳으로 가는 것이었다. 모두가 잠든 한밤중 오필리아는 갓난아기를 데리고 숲의 미로로 항한다. 그러나 지하 왕국의 문을 열기 위해서는 아기가 희생되어야만 했고 이를 알게 된 오필리아는 문 열기를 거부한다. 판과 실랑이를 벌이던 와중 오필리아는 뒤따라온 비달 대위에게 동생을 빼앗기고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한다. 동생을 대신한 희생으로 오필리아는 지하 왕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고 그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는 끝이 난다.
관람평
나에게 이 영화는 공포영화였다. 이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 초등학생이었는데 지금까지도 영화의 장면들이 머릿속에 남아있을 정도로 충격적이었고 무서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 전 넷플릭스 추천으로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됐는데 기괴함과 잔인함은 기억 속 그대로였지만 그때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였다. 이동진 평론가님이 이 영화에 대해 이런 말을 하신 적이 있다. '동화가 불가능한 세계에서 동화를 만들어 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 어릴 적 내가 놓친 게 이 부분이었다. 누군가는 투쟁으로 누군가는 상상으로 힘든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각자의 동화를 만들어냈고 그런 상황이 오히려 현실이 얼마나 절망적이었는지를 반증해 주고 있어 너무 가슴 아팠고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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